봄빛이 한껏 흐드러져 산에산에 개나리 피고 과원에 살구꽃, 배꽃이 화사할 때 환희롭던 가슴이 뒤미처 락화의 애절함으로 가득 메워지는 감각은 지성이 있는 사람이면 아무나 간직할수 있다. 그러나 피는 꽃 저 너머에 지는 꽃의 처연한 서글픔은 감각으로가 아니라 절실한 마음으로만 읽어야 할것이다.
봄도 한철, 꽃도 한철,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그처럼 화사하던 꽃잎이 스러지고있다. 열매의 꿈을 기리여 꼭 붙안고있던 가지를 기꺼이 놓아버리는걸가. 꽃은 스스로 사연이 있어 피고 잎이 떨어지는것은 우리가 모르는 리유가 있을것이다. 홀로 존재하고 시간속에 영원히 머무는것이란 없듯이 홀로 움트고 홀로 자라는것이란 없다. 꽃은 어떤 사연에 의하여 피고 어떤 사연에 있어서 지는것은 사실이련만….
봄한철 설레임을 보듬으며 꽃은 지고있다. 분분한 락화…꽃의 사연을 나비가 더 잘알가? 꿀벌이 더 속속들이 읽을가?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록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을 가을을 향하여 꽃은 꽃답게 죽지만 그러나 미련없는 락화에 과연 애절함이 없을것인가?
새잎이 돋아나고 힘차게 줄기가 뻗고 피여서 방글거리고 나비는 화려한 꽃잎을 스치며 희롱하고 꿀벌은 화심을 파고들며 꿀을 빚을 때 꽃은 나비의 날개짓에 더 빨리 지는것일가? 꿀벌에게 아낌없이 내준 그 속살때문에 더 빨리 시들어버리는것일 가? 비로소 어느 아침, 꽃잎이 하롱하롱 지는것을 꽃의 경박함으로 읽어야 하는가? 꽃의 희생을 구구절절 되새기며 열매가 맺히리라는 인과철학을 평온하게 적어가려면 그저 애상적인 상념만으로는 안될것이다.
새 생명을 품은 열매를 위해 자신을 다 바치는 락화의 사연에서 널리 은혜를 베푼다는 이른바 보시(普施)를 배울듯싶다.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한껏 화려하게 단장하는 꽃의 마음에서 우리는 인간의 심령의 경계를 그을수도 있지 않을가? 꿀벌이 꽃의 속살을 파고들 때 기쁨도 슬픔도 인내하는 꽃의 지혜를 배울듯싶고 꽃이 시사하는 사연이라면 무작정 잠기게 되는 애상에서 인고의 철학도 배울듯싶다.
꽃은 꼭 피여야 한다면 다시 락화의 계절을 맞아야 하지만 아무도 락화의 한을 제때에 떠나는 말끔하고 쾌적한 정경이라고 마음 가볍게 말하지는 못할것이다. 달도 차면 기울어지기 마련인데 하믈며 여린 꽃들임에랴!밤에 몰래 피여 아침에 수집게 미소하는것은 사람들을 위함인지 아니면 허랑한 나비를 부르는 추파인지 알수 없지만 웃으며 꿀벌을 받아들이는 꽃의 자태에서 거짓없는 참됨을 생각하게 된다,
고운 꽃에는 나비가 날아들고 향기로운 꽃에는 꿀벌이 모여든다. 나비는 고운 날개짓으로 꽃을 희롱하고 꿀벌은 달디단 생활을 빚는다. 나비의 유혹은 눈부시여도 허랑하고 꿀벌의 붕붕거리는 노래는 질박해도 실속이 있다. 노래구절이 또 절로 떠오른다. 녀성은 꽃이라네 생활의 꽃이라네 /한가정 알뜰살뜰 돌보는 꽃이라네 /정다운 안해여 누나여 그대들 없다면/ 생활의 한자리가 비여있으리 /녀성은 꽃이라네 생활의 꽃이라네
어디서 누가 지은것이건 정나미도는 노래요 련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노래다. 녀자를 처음으로 꽃에 비유한 사람은 천재요, 두번째로 비유한 사람은 둔재요 세번째로 비유한 사람은 용재라고 하더라만 참된 녀인들은 확실히 꽃에 비유해도 어페는 없으렸다.10대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는 한창 꽃꿈이 무르익는 싱싱한 꽃이라 하겠고 20대 중반, 전후는 최고로 흐드러져 절정의 향기를 뿜는 꽃이라 할수 있겠고 30세가 넘어가면 꽃으로서는 시들어가는 애수가 깃들지 모르나 성숙의 극치를 보여줌에는 손색이 없는 꽃들이렸다.
대자연속에 꽃들에는 봉선화도 있고 함박꽃도 있고 청순한 나리꽃도 있고 가시많은 장미도 있고 청초한 백합도 있고 진탕에 피여있어도 청순한 련꽃도 있고 수수한 들국화도 있고 설중매화도…한국의 국화라서 좀 그렇지만 줄기에 진딧물이 들어붙는 지저분한 무궁화꽃도 있고 화사하게 피였다가 금방 스러지는 벗꽃도 있다. 꽃같은 녀인들도 저마끔 숙명같은 자기 타잎이 있으리라. 꽃은 향기로 값지고 그리고 알뜰히 살뜰히 맺은 열매로 소중하리라.
그러나 달콤한 열매의 꿈을 기약하고 조용히 지는 락화의 사연을 두고“서풍이 간밤새에 원림을 지나더니 새노란 꽃이파리 온 땅에 떨어졌네”라고 읊었던 왕안석의 애수를 로옹도 느껴지는걸 어이할고? 말마소. 자고로 락화류수는 정많은 사람들의 애간장을 말렸거늘…학교로 출근하며 간밤 바람에 떨어져 흩날린 벗꽃을 일별하노라니 미물도 아닌 꽃은 저렇게 순리대로 피고 지는데 인간들의 몸과 마음도 피고 또 지는 자연의 섭리를 터득하며 살아가고 있는것일가? 실없는 자문끝에 오래전에 뇌까려 보았던 시구를 다시 잠꼬대처럼 중얼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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